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
- 2025년 12월 27일 대만 규모 7.0 지진이 TSMC 선단 공정 운영에 남긴 신호
- 2025년 11월 TSMC 전직 임원 관련 영업비밀·경쟁금지 소송의 성격과 파급
- 두 사건이 2나노·3나노 경쟁 구도에서 “공급 안정성”과 “정보 신뢰”를 어떻게 재평가하게 만드는지
- 그 재평가가 한국의 삼성 파운드리 위상에 주는 기회와 한계(가능성별 시나리오)
2나노·3나노 전쟁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 미세화 경쟁에서 신뢰 경쟁으로
2026년의 파운드리 경쟁을 2나노·3나노라는 숫자로만 보면, 시장은 단순해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고객사(모바일 AP, AI/HPC, 데이터센터용 가속기)는 이제 “가장 미세한 공정”보다 “가장 확실한 공급”을 더 무겁게 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선단 공정은 단순히 공정명이 아니라, 설계 생태계(PDK, IP, EDA), 수율, 패키징, 물류, 보안까지 맞물려 움직이는 거대한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TSMC가 2025년 12월 말 “규모 7.0 지진”을 맞았고, 그 직전인 2025년 11월에는 전직 고위 임원의 이직을 둘러싸고 “영업비밀 유출 위험”을 이유로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한쪽은 공장을 흔드는 물리적 리스크이고, 다른 한쪽은 회사 내부를 흔드는 정보 리스크입니다. 이 두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면, 고객사는 기술 로드맵뿐 아니라 “리스크 분산(멀티소싱)”의 필요성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삼성의 존재감이 커지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TSMC가 1위인 상황에서, 선단 공정의 실질적 대안으로 거론될 수 있는 기업은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은 3나노에서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기반 생산을 시작했고(2022년 발표), 2025년 하반기와 4분기에는 2나노 GAA 제품 양산 램프업 계획을 공식 실적 발표에서 언급해 왔습니다.
사건 1: 대만 규모 7.0 지진이 선단 공정에 남긴 ‘팩트’와 ‘해석’
먼저 팩트부터 정리하겠습니다.
2025년 12월 27일 밤 11시 05분(대만 현지 시각), 대만 북동부 이란(宜蘭) 인근 해역에서 규모 7.0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진앙은 이란현청 동쪽 약 32.3km 해역, 진원 깊이는 72.8km로 발표되었습니다.
CNA와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TSMC는 일부 시설에서 흔들림이 사전 설정된 기준에 도달해 직원 일부를 대피시켰고, 안전 점검 이후 대응 절차를 수행했습니다.
이 ‘대피’라는 단어가 중요한 이유는, 선단 공정에서는 몇 시간 단위의 점검·일시 정지조차도 비용이 크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번 사건의 또 다른 메시지는 “대만 생산의 회복탄력성”입니다. 지진 후 대만 전역에서 일부 교통·도시 인프라가 일시적으로 영향을 받았지만, 대규모 시설 피해가 즉각 확인된 양상은 아니었고, TSMC도 안전 프로토콜 중심의 대응을 강조했습니다.
해석은 여기서 갈립니다.
첫째, 부정적 해석은 “리스크는 0이 아니다”입니다. 대만은 지진대에 있고, 선단 공정의 글로벌 집중도가 높습니다. 지진이 ‘이번에는’ 큰 피해로 번지지 않았더라도, 고객사는 “만약 다음엔?”을 늘 계산합니다.
둘째, 긍정적 해석은 “TSMC는 이미 리스크 관리 체계를 산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입니다. 실제로 이번 지진에서도 대피-점검-복귀 같은 절차가 빠르게 실행되었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이 두 해석은 동시에 성립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삼성에게 기회가 생깁니다. 고객사가 TSMC의 복구 능력을 인정하더라도, 조달 책임자는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쪽으로 제도와 계약을 설계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문제가 생기면 잘 복구한다”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낮다/대체선이 있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사건 2: ‘기술유출 확정’이 아니라 ‘유출 위험’에 대한 선제 소송이라는 점이 핵심
두 번째 사건은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단계는 수사·소송이 진행 중이며, 확정 판결로 사실관계가 최종 확정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TSMC가 무엇을 주장했고, 어떤 법적 조치를 즉시 취했는가”라는 팩트에 집중하겠습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TSMC는 2025년 11월 25일, 전직 고위 임원(Wei-Jen Lo)이 인텔로 합류한 상황과 관련해 대만 지식재산·상업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의 골자는 고용계약과 경쟁금지 합의, 그리고 대만 영업비밀법(Trade Secrets Act) 위반 가능성이며, TSMC는 기밀이 경쟁사로 이전·공유될 “높은 확률의 위험”을 우려했다고 전해졌습니다.
TSMC의 공식 발표 내용을 보도한 CNA 역시 소송 근거(고용계약, 경쟁금지 동의서, 영업비밀법)를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이 사건이 2나노·3나노 경쟁에 미치는 실질적 파급은 “기술이 새어 나갔느냐”보다, 다음 세 가지 변화에서 발생합니다.
- 선단 공정 경쟁에서 보안과 법무가 ‘핵심 공정’으로 격상
선단 공정은 설계·제조 정보의 분리가 생명입니다. 고객사 입장에서도 파운드리의 보안 체계는 납품 품질만큼 중요합니다. TSMC가 공개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순간, 업계 전체는 보안 프로토콜을 강화하는 쪽으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게 됩니다. - 인재 이동이 ‘속도’가 아니라 ‘정당성’과 ‘컴플라이언스’의 게임으로 변함
경쟁사가 핵심 인재를 영입할 때, 이제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나”뿐 아니라 “그 영입이 법적 리스크를 동반하나”를 따집니다. 그 자체가 고객사의 조달 판단에도 영향을 줍니다. - 고객사의 멀티소싱 압박이 커짐
지진 같은 물리적 변수와, 영업비밀 같은 정보 변수가 동시에 커지면, 고객사는 단일 벤더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을 더 쉽게 내부 설득할 수 있습니다. “기술 최적”의 논리가 “리스크 최적”의 논리에 밀릴 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2나노·3나노 경쟁 구도에서 삼성의 위상은 어디에 놓이는가
이제 삼성 중심으로, 가능성별 시나리오를 현실적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는 하나입니다. 2026년의 승부는 “2나노를 발표했는가”가 아니라 “고객이 실제 제품으로 양산할 수 있는가”로 갈린다는 점입니다.
삼성은 2022년에 3나노 GAA 생산 시작을 발표하며 GAA 선행 경험을 강조해 왔고, 2025년 실적 발표에서도 2나노 GAA 제품 양산 램프업을 언급했습니다.
또한 삼성 반도체 뉴스룸의 2025년 2분기 실적 관련 발표에서는 2025년 하반기 2나노 GAA 기반 신규 모바일 SoC 양산 확대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반면 TSMC는 AI 수요 확대 속에서 선단 공정 캐파가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삼성이 잘하면 기회가 열리는” 형태입니다. 여기서 ‘잘한다’는 것은 단순 수율뿐 아니라 고객이 요구하는 납기·품질·보안·설계지원까지 포함합니다.
시나리오 A: 기본 시나리오 (가장 가능성 높음)
지진은 SOP에 따라 대피·점검 후 정상화되고, 소송은 보안 강화로 이어지지만, TSMC의 3나노·2나노 주력 고객 락인은 유지됩니다.
이 경우 삼성의 수혜는 “대규모 물량 이동”이 아니라 “세컨드 소스 검토 증가”로 나타납니다. 고객이 당장 옮기지 않더라도, 설계 포팅과 PDK 검증을 미리 돌려 두는 ‘옵션 확보’가 늘어납니다. 이 단계의 승부는 숫자로는 작아도 전략적으로 큽니다. 옵션이 옵션으로 남느냐, 실제 양산 계약으로 이어지느냐는 다음 시나리오에서 갈립니다.
시나리오 B: 삼성에 유리한 전개
조건은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첫째, TSMC의 3나노 캐파가 AI 수요로 더 타이트해져 납기·가격 압력이 커질 때입니다.
둘째, 2나노 초기 램프에서 특정 고객군(모바일 또는 일부 HPC)이 일정 물량을 분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입니다. 이때 삼성은 2나노 GAA 램프업 계획과 3나노 GAA 경험을 근거로 “기술 로드맵 + 공급망 분산” 패키지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 업사이드 시나리오에서 삼성의 위상은 “추격자”가 아니라 “리스크 분산의 핵심 축”으로 재정의됩니다. 고객사는 단일 1위 벤더가 아니라, 1위+2위의 조합으로 공급망을 설계하기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C: 삼성에 불리한 전개
TSMC의 2나노가 빠르게 안정화되고, 고객이 설계 생태계를 TSMC 중심으로 더 깊게 묶어 버리면, 삼성의 기회는 제한됩니다. 이 경우 삼성은 “기술 존재”와 “고객 대규모 양산”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과제가 됩니다. 특히 선단 공정은 고객사 설계자산과 IP 생태계가 결정적이어서, 한 번 굳어지면 이동 비용이 커집니다.
시나리오 D: 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테일 리스크
대만에서 더 큰 재난이 반복되거나, 영업비밀 분쟁이 업계 전반의 규제·통제로 확산되면, 단기적으로는 칩 가격과 납기 변동성이 커집니다. 이런 국면에서 삼성은 “한국 거점”이라는 지리적 분산의 의미가 커질 수 있지만, 동시에 글로벌 고객사의 요구(보안·컴플라이언스·추적 가능성)도 훨씬 강화되므로, 준비가 안 되면 역풍도 가능합니다.
마무리: 삼성의 기회는 ‘TSMC의 위기’가 아니라 ‘고객사의 리스크 재계산’에서 나온다
이번 두 사건을 하나로 묶어 보면 결론은 단순합니다. 지진은 “물리적 집중 리스크”를, 소송은 “정보 신뢰 리스크”를 시장에 상기시켰습니다.
그리고 선단 공정의 고객사는 이제 기술만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공급이 멈출 가능성, 정보가 새어 나갈 가능성,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를 믿고 체계를 맡길 수 있는지까지 묻습니다.
삼성에게 중요한 것은 “TSMC가 흔들렸으니 기회”라는 단순한 해석이 아닙니다. 고객사의 조달 모델이 멀티소싱으로 이동할 때, 삼성은 그 선택지의 품질을 실제 계약과 양산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2026년의 승부는 결국 한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2나노·3나노 경쟁은 미세화의 전쟁이면서 동시에 신뢰의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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